이성계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위화도에 진을 쳤다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한 후 역성혁명을 통해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이때 위화도에서 회군을 할 수 밖에 없다는 4불가론을 주장했는데요, 위화도 회군 4불가론은 어떤 내용일까요? 위화도 회군 4불가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위화도 회군 4불가론>
명나라의 요동을 빼앗기 위해 군사를 이끌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 진을 쳤다가 말을 돌려 이른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습니다.
명나라가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자 최영은 명나라의 요구를 무시하고, 요동을 점령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를 비롯한 이성계 측은 4불가론을 주장하면서 회군을 하고 말았는데요, 4불가론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셋째, 고려가 요동을 공격하는 동안 왜구가 쳐들어올 염려가 있다.
넷째, 여름철에는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으며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수 있어 전쟁이 불가하다.
결국 이성계와 조민수 등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을 함락시키고 요동 정벌을 명령한 최영 장군과 우왕을 내쫓고 정권을 손에 쥐었는데, 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입니다.
<이성계 왕이 되다>
덕이 없어 민심을 잃은 왕을 하늘의 뜻으로 내쫓고 왕의 후손이 아닌 자가 왕위에 오르는 일을 역성혁명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통해 조선을 건국하고 조선의 초대왕이 되었습니다.
1392년 7월 마침내 이성계는 역성혁명으로 신진 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고, 고려는 34왕 47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으며, 조선 왕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지 10여일이 지나자 임금으로서 최초의 교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나라이름을 그대로 고려라 하고, 모든 제도를 전 왕조와 같이 하겠노라." 였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의 이름을 당장 고치지 않은 것은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태조 이성계는 나라를 다스릴 17가지 정책을 발표하였으며, 막내 왕자 방석을 세자로 삼았고, 개국 공신 44명에게는 상을 내렸습니다.
조정 대신들도 교체헸는데요, 문하부 좌시중에 배극렴, 우시중에 조준이 각각 임명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나라가 첫발을 내디뎠지만 따르지 않는 자들이 많아 이성계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점차 새 왕조의 기틀이 갖추어지자 정도전, 조준 등이 국호를 바꿀 것을 건의했고, 태조 2년(1393) 2월 15일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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